백범일지(白凡逸志), 이 책은 독립운동가인 백범 김구 선생이 쓴 자서전으로 1947년 12월 15일 국사원에서 발행된 초판본 상·하권을 기반으로 한 권으로 통합한 것이다. <우리집과 내 어릴 적>, <기구한 젊은 때>, <방랑의 길>, <민족에 내놓은 몸>, <3·1운동의 상해>, <기적 장강 만리풍> <나의 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록으로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김구 선생 연대기>가 덧붙여 졌다. 1947년에 초판본이 발간되었기 때문에 <백범일지>는 요즘 쓰지 않는 단어나 어려운 한문, 한자어가 많아 요즘 사람들이 접근하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편집부에서 (*)표기를 통해 해석을 달았다.
"예로부터 천하에 흥하여보지 아니한 나라도 없고, 망해보지 아니한 나라도 없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는 데도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 있고, 더럽게 망하는 것이 있다. 어느 나라 국민이 의로써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망하는 것은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며, 그와는 반대로 백성이 여러 패로 갈라져 한 편은 이 나라에 붙고 한 편은 저 나라에 붙어서 외국에는 아첨하고 제 동포와는 싸워서 망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이다. 이제 왜의 세력이 전국에 충만하여 궐내에까지 침입하여서 대신도 적의 마음대로 내고 들이게 되었으니 우리나라가 제 2의 왜국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고에 망하지 아니한 나라가 없고, 천하에 죽지 아니한 사람이 있던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일건사가 남아있을 뿐이다."
김구 선생은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1876년 8월 29일 태어나서 1949년 6월 26일 별세할 때까지 평생 조국의 해방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이다. 17세 때에 과거에 응시하는 것을 포기하고 동학에 입문하여 19세에 팔봉접주로 활약하면서부터 동학군에 몸담았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9년 3·1운동 후에 상해로 망명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다양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 내무총장을 맡았다가 1926년에는 국무령, 1939년에는 임시정부 주석을 맡았다. 1940년에는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여 일본을 상대로 항일독립투쟁을 준비하던 중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후에는 1947년 11월 국제연합 감시하에 남북총선거에 의한 통합 정부수립결의안을 지지하였으나, 1948년에 남북한 각각 단독정부가 세워지고 말았다. 남한에서 이승만이 대통령에 선출되자 1949년 6월 26일 경교장(京橋莊)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安斗熙)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사망 후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고,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추서되었으며, 4·19혁명 뒤 서울 남산공원에 동상이 세워졌다. 저서로는 자서전 『백범일지(白凡逸志)』가 있다. 70년이 지난 현재에도 김구 선생은 ‘한국 독립운동의 영원한 별’로 더욱 뚜렷하게 각인이 되었다.